세련
내가 어떻게 세련될 수 있겠는가
내게 타인은 무겁다. 타인은 매번 거추장스럽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먼저 원하는 쪽은 나인 것 같다.
쓰기만 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 중에 제일로 좋은 것이 이 방법이라는 걸, 나도 안다.
아프겠다고 했고.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더 좋은 사람이 되기에는 글렀다.
다들 사랑을 찾아 움직이고. 나는, 서 있다. 응. 우연 없다.
이 고시텔에 동행을 데려오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곳은 꽤나 누추하다. 칸마다, 그닥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누워 있으며 화장실에는 항상 누군가가 들어가 있다. 여기는 가난의 실체적 모습을 그려주며, 그 모습에 합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부를 하거나 혹은 직업 때문에 여기서 산다는 것은 핑계에 가깝다. 그런 이들도 풍족했다면, 같은 화장실을 쓰거나 혹은 손님을 들이기엔 어색한 이곳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분간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에 다만 내가 있고. 단 하나의 마음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에는 사랑도 없고 절망도 없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거기 안에는 그런 것이 없다.
망해간다는 일념 속에서, 나는 생일을 맞는다. 무엇이 옳은지 나는 이제 판단할 수 없다. 나라는 것이 사라진 어느 세계 위에 서 있다.
사람들이 묻는다. 왜 여기에 있냐고. 내가 대답한다. 사람들이 내게 대답한다. 왜 그런 고생을 하느냐고. 돌아가라고. 혹은 돌아오라고. 그들은 내가 거기로 가면, 나를 환대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내가 편히 잘 곳이 있고, 내 책들을 둘 책장과 책상이 있고, 내가 배부르게 먹고 쉴만한, 그런 환경을 갖춘 것처럼 말한다.
나만 읽는 글이란 것을 가져도 되는 걸까. 절대 노출이 없는 글을. 나는 거기다 무엇을 써야 할까.
나의 소극적인 어떤 방어기제가. 균열을 불러 왔다. 오히려 삶 전체는 균열이었고. 그 틈 사이에 나는 사는 것이었다.
일상을 쓰기로 약속했던 것은 벌써 지켜지지 않는다. 나느 그 지옥을 보고 싶지가 않고, 또한 남기고 싶지도 않다.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이 세상. 또한 나를 미치지 못하게 했던 시. 아직도 나는 여기에 있다. 미칠 것 같은 심장을 들고. 그 박동을 느끼며 나는 여기에 있다. 벗어날 수가 없는 너무나 지독한 세상의 틈바구니에. 나는 끼어 있다. 펜을 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런 미칠듯한 고민도 하지 않았을려나. 누구보다 행복하고 멋들어진. 그리고 안정적이고 준수한 삶을 살고 있으려나. 내게 펜을 쥐여준 것은 누구인가. 나는 오늘 문득 생각하였다. 이 펜을 쥐여준 것은. 그 존재는 세상이었다. 나의 세상이었다. 언젠가부터. 서울에 올라오고. 혼자가 되고. 문학도 그 무엇도 시원치 않을 때. 그럴 때마다 내가 맞닥뜨린 것은 세상이었다. 지난 날, 단순히 한 명의 사람이고, 일련의 사건이던 것들이 모두 베일을 벗었다. 그건 내가 동경했었고 또한 사랑했었던 얼굴.
나는 다시 살 수 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어떤 방법이면?
나는 여전히 세상을 믿지 않고 있다. 나의 펜과 나의 시로? 모르겠다. 때로는 이것들마저도 저쪽의 편이고 나는 여기에 있다. 아직도 여기에 있다.
세상에 남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듣지도 펼쳐주지도 않는다면. 결국엔 나 같은 사람 하나 더 있게 되는 것이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