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일을 대충 마무리 지어 놓고, 멍하니 모니터 아래에 붙여둔 혜원 사진을 본다.

혜원은 처음이라는 말이 핑계 같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사랑을 여러번 했더라도 나는 지금과 같았을 것이다. 이런 사랑은 내가 여태 해왔던 어떤 사랑들과 비교해도 달랐을 테니까. 그건 또 다른 처음일 뿐, 경험이나 데이터가 되지 않았을 테니까.

혜원과 나는 반지를 보러 가려고 이곳저곳을 예약한다. 이것도 처음이다. 반지를 맞추고 싶다는 것도. 혜원과 더 가까워질 수 있고, 더 긴밀해질 수 있다면 뭐든지 하려고. 혜원과 연인을 넘어 가족이 되고 싶다. 몰라... 내 욕심인가...

글을 이쯤 쓰고 다시 멍하니 혜원 사진을 본다.

혜원은 저 사진을 찍었을 때가 2023년이라고 했다. 2023년에 나는 뭘 했지. 그해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었지만... 계속 살아서 어떤 걸 더 할 수 있는지...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긴장도 기대도 되지 않았었다.

이 글을 끝내려는 지금 다시 혜원의 사진을 본다.

죽지 않고 버티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온다고 누가 그랬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그런 생각으로 죽지 않아야지 한 건 아니었다. 죽고 싶을 때마저도 나는 실망할까봐 희망도 품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낸 현재를 지나 내가 닿은 미래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미래였다.

나는 나와 같은 반지를 낀 혜원의 손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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