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나는 나중이란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중이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희망이라거나, 미래라거나, 이런 단어들은 마음에 든다. 희망과 미래는 미뤄진, 지연될 것이란 의미는 아니니까. 나중은 지금 해야할 것을, 하고 있는 것을 보류할 것이고 그게 이루어지기 힘든 때를 말하는 것만 같다.
혜원과 자주 나누는 대화 중에 하나도 그런 것이다. 우리가 나중에도 이만큼 사랑할까, 하는 것. 특히 내가. 내가 혜원을 지금 사랑하는 만큼 나중에도 사랑할까? 이런 비슷한 느낌의 대화가 혜원과 나 사이에 오갈 때마다 나는 조금은 안심이 되곤 한다. 어쨌든 혜원이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하지만 혜원에게 확신을 주는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이 방법을 고민하면서 알게 된 건 한 가지 있다. 그건 내가 누군가에게, 특히 연인에게 확신을 주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는 거다. 그만큼 사랑한 적도 없었거니와 확신을 요구받은 적이 있더라도 회피했던 게 분명했다. 기억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혜원에게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느낀 적이 없어서다.
내가 혜원에게 느끼는 감정은 하나의 면만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여러 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당히 고차원의 감정이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 이런 형태의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다. 혜원을 만나고 혜원을 생각하고 혜원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이런 형태일 뿐이다. 혜원을 향한 감정에 대해 하나의 단면만 여기에 소개해보자면,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혜원이 나와의 약속을 깨고 나서 다시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의 머리는 혜원을 밀어내라고 했는데... 내 마음이 혜원에게 정말로 무참히 쏠리던 그 느낌. 나도 계산할 줄 알고(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런 계산에 따라 그런 계산이 맞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인데... 내 머리가 혜원을 밀어내려고 손가락 끝에 힘을 넣을 때마다 그 힘으로 어플을 종료했다. 그리고 다시 어플을 키면 내가 좋아하는 혜원의 사진이 다시 나타났다. 그게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러다 혜원에게 메세지를 보낼 결심을 하고 메세지를 보낸 뒤로, 나에게 나중이란 없어졌다. 미룰 수 없다. 혜원을 향한 감정을 미룰 이유가 없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혜원을 사랑해야지. 잘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 뻔했으니까. 그만큼 혜원은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
혜원을 향한 나의 이런 사랑이 언제 끝이 날까. 혜원은 나와 치킨이랑 피자를 먹고 잠에 들었고, 나는 이 새벽에 깨어서 이 글을 쓴다. 생각해보니... 내 사랑이 왜 끝나야 하는 걸까? 끝나지 않는 사랑도 있잖아. 특히 부모-자식 같의 사랑이 그렇고... 또 아가페도 그런 것 아닌가? 끝이 없는. 그러니까 으레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너무도 당연한 사랑 같은 것이. 연인, 부부 간의 사랑이... 무조건 시작과 끝이 있으라는 법은 없지 않나. 어쩌면 수많은 끝을 봐온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끝이 있는 사랑이기에 으레 내 사랑도 끝이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 내 사랑의 끝은 내 죽음 뒤로 미뤄야겠다. 이제 나중을 쓸만하다. 내가 죽고난 다음, 그러니까 나중으로 내 사랑의 끝을 미룬다. 내가 죽고 나서도, 그리고 혜원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서 한참 뒤에도 이 사랑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에, 글로써 남긴 사랑으로. 앞서 말했지만 내가 혜원을 사랑하는 사랑은 아주 고차원적이다. 그래서 여기에 모든 걸 담을 순 없다. 나는 얼른 이 글을 마치고 여기를 벗어나 혜원을 안아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