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향린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혜원이 고른 양식집으로 갔다. 나는 저런 기도문은 처음 들었다고, 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거 같다며 웃었다. 혜원은 국악 찬송가가 신기했다고, 오늘 빨간약을 먹었다며 웃었다. 양식집에 도착해 샐러드와 엔쵸비 파스타와 고구마 뇨끼를 시켜서 나눠 먹었다. 엔쵸비 파스타는 처음 먹어본 맛이었는데, 고구마 뇨끼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맛있는 맛이었다. 혜원도 고구마 뇨끼는 처음 먹어본 맛인데 너무 맛있었다고 했다. 함께 먹은 음식이 맛있다고 말하는 혜원의 얼굴을 보았다.

밥을 다 먹고 연극을 보러 혜화역으로 갔다. 연극을 보게 될 극장 근처에 동양서림이 있어서 혜원의 손을 잡고 갔다. 동양서림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오는 건 나의 꿈이었는데, 오랜 꿈 하나를 이룬 셈이었다. 책을 보는 혜원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혜원이 민음사에서 나오는 책들이 점점 예뻐진다고, 하지만 자신은 세계문학전집이 좋다고 했다. 가볍고 싸다. 나는 혜원의 집 책장에 꽂힌 인간실격이 떠올랐다. 세계문학전집 전권을 사주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다던 혜원의 손을 잡고 서점을 나가서 카페에 갔다. 혜원은 혜원이 마신 디카페인 커피를 마음에 들어 했다. 언젠가 원두를 사서 갈아서 내가 직접 내려줘야지, 했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까지 혜원과 함께 했다. 고양이가 말했어, 이 연극이 20년 지나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20년 전, 그때의 나는 공연이란 게 뭔지 알지도 못했었다. 20년이 지나 다시 무대에 오른 이 연극을 혜원과 함께 관람했다. 이 우연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고 연극의 주연이었던 혜원의 친구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혜원이랑 시시콜콜한 대화를 했는데... 연극이 20년이라는 잴 수 있는 시간이 흐른 것에 비해 혜원과 실없이 웃으면서 하는 대화에서 내가 느낀 기시감은... 대체 몇 년의 시간 사이에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만큼 오래 전에 느껴본 느낌이었다. 게다가 내 앞의 혜원은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겨울의 오후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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