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새벽에 혜원이 나를 보고 있었다. 빤히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먹은 걸 토했다고, 서평을 썼다고 했다. 새벽 몇 시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혜원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눴다.
혜원이 쓴 서평은 민병훈 소설가의 어떤 가정을 읽고 쓴 거였다. 민병훈 소설가의 아버지가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아는데, 아무래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어떤 가정에도 쓰인 모양이다. 혜원이 살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모든 게 귀찮다고.
나는 가만히 혜원의 하얀 볼을 쓸어준다.
최근에 발견한 나의 2023년 메모에선 왜 살아야 하는지 계속 묻는 내가 있었다. 지난한 삶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던 시간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주말엔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잠을 잤고, 평일엔 지칠 때까지 자위를 했다. 송경동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피가 날 때까지… 피가 날 때까지.
언제쯤 삶과 죽음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말하는 죽음에 대해서. 죽음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밧줄과 철봉을 검색 해보던 때가. 도무지 그립지 않은 그 시절이, 있었다.
내가 잘 살아서 좋은 날을 맞이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요즘 나의 기분이나 마음은… 아무리 추워도 춥지 않달까… 불안이나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는 아니다. 미래에 대해, 더욱이 혜원과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면 그 미래가 너무나도 소중한 나머지, 그 미래가 상하지 않도록 무슨 수든 다 쓸 요량이 된다.
그것 말고는 모든 게 좋다. 혜원의 얼굴을 매일 보는 것, 특히 매일 아침에 보는 것. 저녁마다 대화하는 것. 주말에 여행갈 곳을 정하고, 기차표를 끊는 것. 함께 기대에 부푸는 것까지.
혜원은 나보다 조금 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중인 걸까.
가까운 미래에 혜원이 지금의 나보다 더 여유롭고 즐거운 때가 왔으면 좋겠다. 혜원이 마음에 드는 일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돈도 지금보다 많이 벌고, 자기만의 시간도 더 생기고. 혜원이 있는 곳이 어디든 지금보다 안락한 곳이었으면. 나는 혜원이 볼 더 나은 세상의 아주 작은 조각 중 하나라도 됐으면 좋겠다.
그때에도 우리가 사랑하고 있었으면. 더는 바랄 게 없겠다.